시사상식(국제)

할렘은 정말 위험한 동네일까?

스빛7 2020. 6. 16. 16:13

뉴욕시 맨해튼 북부의 지역. 보통 센트럴 파크보다 북쪽 지역을 말하며, 다시 동서로 잘라서 웨스트할렘과 이스트할렘으로 나뉜다. 보통 말하는 "할렘"은 이스트 할렘.

미국 식민지 개척 초기에 뉴욕에 자리잡고 있던 네덜란드 이주민들이 네덜란드 도시 하를럼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당시 뉴욕은 뉴 암스테르담이었고 암스테르담 옆의 도시인 하를럼의 이름을 따다가 이 지역에 붙였다고한다.

 

 

우범지역

 

19세기만 하더라도 상당히 전원적인 분위기의 상류층 주거지였지만, 19세기 후반 농장 생산성이 떨어지고 1901년 발효될 예정이던 새로운 주택법안을 피하기 위해 급속도로 개발되었다. 처음에는 폴로 경기도 열리고 오페라 하우스도 생기는 등 상당히 괜찮은 지역이었지만, 주택의 과다공급으로 인해 주택가격이 폭락하면서 흑인들이 급속도로 몰려들었다.

그래도 1950년경까지는 아직 상당수 백인이 주거하는 중산층 거주지역이었으나 그 이후로 1990년대 초까지 할렘은 흑인들의 주 주거지역으로서, 그리고 범죄의 온상으로서 악명을 떨치게 된다. 당시 할렘은 말 그대로 뉴욕의 어두운 그림자. 그 악명 때문에 지금까지도 '~의 할렘' 이라는 관용구는 게토나 슬럼을 의미하는 또다른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의 할렘이라 불리는 슬럼가들이라 해봤자 대부분 총기 비허용 국가들의 슬럼이라. 예를 들면 예전 청량리 사창가 같은. 새벽 2시에 청량리 사창가를 걸을래 아니면 이스트할렘을 걸을래 물으면 당연히 청량리 사창가를 택하는 게 백만 배 안전하다. 적어도 9mm 파라벨럼 총탄 세례에 벌집이 될 가능성은 없으니.

고우영은 1970년대 뉴욕에 여행을 갔다가 이곳에서 참담한 일을 당할 뻔한 적이 있다. 현지의 지인과 함께 자가용을 타고 시내 드라이브를 하는데, 하필이면 할렘 거리 내에서 고우영은 급한 설사물갈이로 괴로워했다. 하지만 화장실을 발견하지 못하는 건 둘째치고 할렘에서 하차했다간 뭔 일이 일어날지는 뻔한 일이라.....동승한 지인도 '시트 더럽히는 게 배에 구멍나는 것보단 나아요!'라고 말할 지경. 다행히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를 찾아서 겨우 수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젠트리피케이션

 

그러나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이 1990년대 초부터 의욕적으로 벌인 범죄 퇴치정책, 흑인 문화의 심장이라는 브랜드, 정부의 재개발 계획, 그리고 땅값이 비싸 갈데 없어진 뉴요커들 등등 여러 요소 덕에 안전해지고 땅값이 싼 할렘에 사람들이 눈을 돌리며 할렘은 재개발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를 계기로 2010년대 들어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우범지역이라는 말은 정말 옛말이 되었다. 할렘에 유입되는 백인들이 늘고 흑인이 줄면서 이제는 밤중에 바에 가도, 흑인 음식점에 가도 타인종이 더 많이 보인다. 그리고 외국 이민자들도 할렘에 집을 얻기 시작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빌 클린턴 정권 당시 할렘지역의 개발을 위해 정부가 UMEZ(Upper Manhattan Empowerment Zone)라는 비영리기관을 설립 후 대규모 지원금을 미끼로 할렘지역에 대기업들을 유도하였다. 그 결과 할렘지역에는 각종 대기업들이 유입되었고, 자연스럽게 임대료가 급상승함에 따라 본래 가난한 흑인들위주의 거주지역이었던 할렘은 대기업들이 지은 문화시설이 늘어나면서 관광지구로 재편되게된다. 이 과정에서 지역에서 밀려난 흑인 거주자들은 대부분 브롱스로 떠나게되었고, 미국 흑인문화의 역사가 담긴 상징적 건물들이 철거되기도 하였다.

 

치안

 

요즘 할렘 중심부는 오히려 브루클린이나 브롱스보다도 안전하고, 이제 많은 백인들이 들어와서 땅값도 많이 올랐다. 그렇게 위험한 동네는 아니고 약간 가난한 동네 수준으로, 차라리 브롱스나 브루클린 외곽 지역이 옛날의 할렘 이미지.

그래도 흑인과 히스패닉계 주민들이 더 많거니와, 주민들이 대놓고 낮이라도 혼자 돌아다니면 위험하다고 할 정도이니 긴장을 늦추면 안된다. 특히 아시안 여자라면 혼자 돌아다니는 거 자체가 상당히 위험하다. 할렘 근처 지역중 그나마도 안전한 곳이 있다면 허드슨 강을 따라서 개발된 서쪽 지역. 좋은 경치와 공해때문에 아무리 할렘근처라해도 맨 서쪽지역만큼은 고소득자들이 많은 편이다. 무엇보다 미국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밤엔 절대로 돌아다니면 안된다. 애초에 밤에 돌아다니는 거 자체를 이해를 못하며 심지어 경찰도 왜 위험하게 밤에 돌아다니냐는 말을 할정도.

 

한편으로는 소외받던 흑인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지금의 흑인 문화를 키워낸 온실과도 같은 존재가 또한 할렘이다. 1920년대에는 흑인 예술이 '할렘 르네상스'라는 단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발전했던 곳, 1980년대 이후 전 세계를 휩쓴 지금의 흑인 문화를 길러낸 곳, 그리고 1960년대 말콤 X가 활동했던 시민 불복종운동의 산실 중 하나였던 곳도 바로 할렘. 문자 그대로 'Black America'의 정신적 문화적 수도다.

이스트 할렘의 경우 흑인 외에도 중남미나 카리브해 출신들 이주자가 많이 몰려 들어서 "스패니시 할렘"이라고도 하는데, 재개발 사업이 웨스트 할렘보다 더디다 보니 아직도 범죄의 온상 이미지가 그대로 남아있는 별천지. 낮에는 안전하지만, 저녁이나 밤일 때는 여행자라면 웬만하면 접근하지 않는 것이 이롭다. 밑에 언급되는 히스패닉 소사이어티 오브 뉴욕이라는 스페인 미술관은 이스트 할렘에 있고, 근처 중국집이 방탄유리 치고 영업할 정도로 위험한 곳이다.